이 글을 쓰기 전에 본 환상
제가 2012년에 사랑하는 교회에 가서, 이 글을 전달했어야 했는데, 그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나님께서 2009년 이전에 제게 먼저 보여주신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1995년 보다 더 오래 됐을 겁니다. 또 2020년에는 안양대학교에 숙제로 제출하기도 한 내용입니다.
한국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한국 교회들에게 핍박과 압력을 가하는데, 한국 교회들이 맥없이 당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항변을 못합니다.
새빨간 완장을 왼 팔에 차고 빨간 수건을 윗도리 왼쪽 주머니에 넣고,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소수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언론, 정치인, 노조, 시민단체, 공무원 노조가 해당 교회를 두들겨 패고 속속들이 파헤치고 언론플레이를 하니까,
침소봉대가 되고 대중이 성이 나서 그 교회를 마구 씹어대고 성도들도 버티기 힘들고 목사를 의심하고 몰아내자고 선전선동했습니다.
[진보좌파] 라는 간판을 커다란 나무 막대기 위에 달고 ‘두둥’ 나타나니까, 대형 교회 목사들은 종잇장 마냥 풀썩 힘없이 무너지고, 그 대형교회들은 곧장 경매로 넘겨지든, 다른 부동산 업자, 아무 것도 모르는 다른 목사나, 진보좌파 목사, 다른 종교기관에 팔렸습니다.
한국 목사들이 떠나서 기존의 서구 자유민주주의 나라들에 가서 교회를 세웠는데,
한국 목사들이 떠나서 기존의 서구 자유민주주의 나라들에 가서 교회를 세웠는데,
이 번에는 여기서도 동성애, 차별금지법, 무슬림, 중국인 및 해외에 파견나가 있는 북한과 중국 공작원, 좌경화된 현지 한인 단체, 외국 현지 진보좌파들의 등쌀에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성경책, 신학교리 책만으로 목사가 됐거나, 은사주의에서 열심히 배웠어도 하나님의 권능을 현실로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목사들은,
대거 교회 문을 닫고 가정집에서 자기 식구들끼리만 예배를 드리거나, 점차 믿음을 잃는 장면이었습니다.
또는 한국 전쟁이 재발돼서,
또는 한국 전쟁이 재발돼서,
그동안 한국 교회 목사와 신학교수들이 자꾸 이상한 교리들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고, 입으로 함부로 말하고, 손으로 함부로 글을 쓰고 나쁜짓을 많이 해서,
그 죄값으로 공산당 지지자들이 개머리 판으로 얼굴을 후려치고, 손등을 내려찍어서, 얼굴과 손가락이 박살나서 뭉게지는 장면을 봤습니다.
또는 각종 강제노역에 끌려다니거나, 극심한 고문을 당해서 온몸이 쭈그러들다 못해 쪼그라들고, 온 몸에 상처가 난자하고 곪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답은 하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답은 하나였습니다.
“도망 갈 데가 없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악의 세력과 맞서 싸워라!”
제가 블로그에서는 “국내에서 낙동강 이남으로 피해라. 해외로 피해라” 등등 별의 별 글을 다 쓰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전부 다 미봉책에 불과하고, 모두 5~10년만 지나면 아무 쓸모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는 “국내에서 낙동강 이남으로 피해라. 해외로 피해라” 등등 별의 별 글을 다 쓰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전부 다 미봉책에 불과하고, 모두 5~10년만 지나면 아무 쓸모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업가들과 부자들도 해외로 도망쳐봐야, 재산과 기업기술, 영업기밀 등등이 줄줄이 털리고 주저앉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도 현실에서 순응적이고 맞서고 싶지 않고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 별 다른 얘기를 해줄 수 없어서, 그런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미리 제글을 보고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은 외국에서 별의 별 문제들에 휩싸여 재산을 많이들 날렸습니다.
어디 도망가지 말고, 바로 여기 대한민국, 바로 지금 이순간 싸우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고, 가장 쉬운 방법이랍니다.
어디 도망가지 말고, 바로 여기 대한민국, 바로 지금 이순간 싸우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고, 가장 쉬운 방법이랍니다.
일제의 핍박을 피해 신사참배하고 말로 대충 회개라고 때운 목사들과 신학자, 성도들이 뜨거운 지옥에서 악마들에게 고문 받는 장면을 유소년 때에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과 제 어머니의 친구 집인 옛 용산구 철길 옆 빈민촌에서 봤습니다.
악마에게 영원히 고문 받는 것은 그 고통과 끝이 기약이 없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처럼 이 땅에 살아서 사람에게 고문받는 게 낫습니다. 대형교회 목사와 유명한 신학자들 상당수가 지옥에 있습니다.
체격이 듬직한 아주머니가 예수님과 함께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지켜보는 장면을, 저는 유소년 시절에 자주 봐왔습니다.
체격이 듬직한 아주머니가 예수님과 함께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지켜보는 장면을, 저는 유소년 시절에 자주 봐왔습니다.
그 아줌마가 바로 덕정 사랑의 교회 최보라 목사로서, 과거의 제가 미래의 최보라 목사를 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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