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종교개혁과 개신교 성립
유럽은 각종 내전 속에서 기사와 영주 가문이 몰락하고, 도시민 세력이 도약하며 왕권강화와 국민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십자군 운동의 실패로 교황권이 유럽에서 고꾸라지면서, 유럽은 카톨릭으로부터 독립을 시작합니다. 영국은 왕실이 주축이 돼서 새로운 교회를 창립했습니다. 프랑스는 교황청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교황들은 더 많은 비용을 충당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향락을 즐기기 위해 성직 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 각종 이권사업을 발달시켜나갑니다.
루터교의 성립과 확산
이 때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여 교황청을 비판합니다.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주관 아래, 보름스에서 논쟁을 벌이고 승리합니다. 바르트부르크의 영주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으로부터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활한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카를 5세를 사주해서 루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복수전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 지배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로써 카를 5세가 신교 영주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루터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한편 파비아 전투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기사단을 독일 화승총병에게 제물로 갖다 바치며 신성로마제국에 패배 하므로써,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장 칼뱅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1526년 부터 오스만 투르크의 슐레이만 1세가 독일황제의 수도 오스트리아 빈을 두 번이나 포위 공격을 하므로써, 신성 로마 제국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였기에 신교 영주들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교 영주들은 신앙의 권리를 약속 받았습니다.
파비아 전투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너무 강해지자,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카를 5세를 배신하고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 빌붙고 연합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위태롭게 합니다. 그래서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는 신교 루터파 용병들을 대거 고용해서 이탈리아 교황령 약탈을 승인했습니다. 이 때 신교 독일 용병들이 교황령을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아래 동영상 37분부터 보시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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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결과 1555년에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종교적 평화 조약을 맺게 됐습니다. 독일 영주(領主)들이 신교(新敎)를 자유롭게 믿게 됐고, 영지(領地)의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얻게 됩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
독일어 문화권인 스위스는 츠빙글리와 칼뱅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츠빙글리는 인문주의자로서 지성(知性)으로 성경을 연구했고, 취리히에서 67개조 논제문 발표 및 카톨릭 수도원 재산 몰수를 했습니다. 스위스 모든 도시들은 개혁에 동참했으나 산악에 있는 주들은 반대해서 양분됐습니다. 8천명의 카톨릭 군대와 츠빙글리의 개신교 군대가 싸우는 중에 츠빙글리는 전사합니다.
장 칼뱅은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옹호하는 글을 여러 편을 발표해서 프랑수아 1세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위스로 도망을 갔고, 제네바에서 파렐을 만나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칼뱅은 천주교와 뚜렷이 다른 교리를 확립해서 전유럽에 보급했습니다. 동서 교회 분열 이후, 다시 서유럽의 교회는 구교와 신교로 갈렸습니다.
33. 가톨릭 교회의 반동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성공 이후, 가톨릭은 스스로 반성과 개혁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종교 재판소와 예수회, 트렌트 공의회, 개혁 교황청을 설립하여 카톨릭 세력을 신교로부터 방어하고 확장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종교재판소는 대학살과 고문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카톨릭을 개혁하고 신대륙과 비유럽권에 신항로 개척과 함께 카톨릭 전파에 앞장섰습니다.
장 칼뱅, 개신교 교황의 탄생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사적 판단의 거부, 카톨릭의 교리 / 규율 / 조직 등의 전통적 태도 고수,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계시와 같은 가치로 인정 등을 확립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카톨릭의 결정이 개신교에도 교훈을 줍니다. 바로 카톨릭의 교의와 전통의 역할이 오늘날 장칼뱅의 교리 역할과 아주 똑같다는 점입니다.
교황 무오설 = 장 칼뱅 무오설
성경보다 앞서는 카톨릭 교의 = 성경보다 앞서는 장 칼뱅 교리
카톨릭의 사적 판단의 거부 = 장 칼뱅과 다른 개인의 성경 해석은 무조건 이단 판정
이상의 이유로 장 칼뱅은 우상으로 낙인이 찍혀서 지금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장 칼뱅은 목 위만 내놓고 땅 속에 묻힌 채 뱀과 구더기가 그 몸을 파먹고 있으며, 그 머리칼은 그의 주위를 둘러싸 박혀 있는 말뚝과 연결돼 있습니다. 악마들은 그 말뚝을 사정없이 내리치는데, 그 충격파가 장 칼뱅의 두개골에 다 전해져서 장 칼뱅은 머리가 천갈래 만갈래 쪼개지는 고통을 영원히 받고 있습니다. 장 칼뱅의 추종자들은 지옥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미 들어온 추종자들은 고통에 못이겨 원한과 분노로 장 칼뱅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습니다. 장 칼뱅이 카톨릭의 마리아와 교황 역할을 개신교 안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 16:15 , 마23:8 말씀이 반드시 장 칼뱅과 그 추종자들에게 죄값을 지옥에서 영원히 치르게 만듭니다.
1983,4년에 그 장면을 본 이후부터 저 한테 가장 큰 저주는 “장 칼뱅 같은 놈”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넌 장(張) 칼뱅이다! 너도 좋은 머리와 지식으로 사람을 죽일 기질이 내재돼있다. 장 칼뱅은 공권력을 장악해서 정적(政敵)들을 제거했지만, 네게는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으로 네 대적들을 제거해주마! 그러나 네 선배가 지금 지옥에서 어떤지 똑바로 지켜보고, 너도 처신 잘하고 사람들에게도 처신을 잘 하라고 분명히 알려주거라!”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티 스토리 [열방 예찬 교회]에서 [네 심장을 다오 1,2] 에 자세한 내용을 제가 써놨습니다.
장 칼뱅이 신교 개혁을 지지하는 글을 써서 높은 사람들에게 갖다 바치다가 박해를 받은 것처럼, 저도 개신교 내부 특히 장로교의 교리적 문제점과 비리, 부패를 까발리고 밝히는 글들을 교계 지도자들과 정치가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제가 위태로움에 빠졌습니다.
그 와중에 기적적으로 대적(對敵)과 정적(政敵)이 될 사람과 세력들이 제거되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밖에도 평행이론처럼 제가 장 칼뱅과 비슷한 인생행로를 겪은 에피소드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장 칼뱅이 이름도 비슷하며, 친근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감사하지만 장 칼뱅처럼 자기 감정, 주변 정황에 휘둘려서 입장을 잘못 정하고 글 잘못 써서 지옥갈까봐, 늘 전전긍긍합니다.
그 와중에 기적적으로 대적(對敵)과 정적(政敵)이 될 사람과 세력들이 제거되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밖에도 평행이론처럼 제가 장 칼뱅과 비슷한 인생행로를 겪은 에피소드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장 칼뱅이 이름도 비슷하며, 친근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감사하지만 장 칼뱅처럼 자기 감정, 주변 정황에 휘둘려서 입장을 잘못 정하고 글 잘못 써서 지옥갈까봐, 늘 전전긍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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