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0일 일요일

구원예정 VS 인간의 수용 노력 : 본론 6부 B

 하나님께서 우시다


가정 교회가 된 열방 예찬 교회


2018.11.7.수 에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서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금낭화로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 날에 어머니와 저는 너무나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짐을 바깥으로 내놓으면서 가리개를 덮었습니다. 물론 그 저녁에는 날씨가 맑았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께서 제게 슬픔과 눈물의 꿈을 보여주신 뒤에 새벽에 일어나니까 정말로 비가 내렸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하는 아침~저녁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이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는 하나님께서 우시는 꿈을 꿨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201510월에 노원구 광운로 19가길 14의 집으로 이사갈 때 꾼 꿈이 있습니다. 그 집의 주인 할아버지가 불 타는 지옥에서 고통에 겨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려주세요! 꺼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살았을 때 전도 받을 걸! 제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교회에 바칠 걸! 이제라도 꺼내주시면 제가 가진 거 다 교회에 내놓고 예수님 믿겠습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 재산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돈이 궁하면, 십일조나 잘 주시면 됩니다. 할아버지는 남매를 두고 계신데, 둘 다 독신이고 저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습니다. 특히 그 집 딸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저와 어머니가 밖에 나가면 그 집 딸을 길거리에서 만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젊어서 목수를 하시며 돈을 많이 버셨고, 땅을 많이 사두셨기 때문에, 일을 안해도 땅 임대료만으로도 부유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 딸은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어서 부잣집 딸인데도, 옷을 누추하게 입으며 화장도 안하고 피부관리도 안합니다. 게다가 키도 엄청나게 작아서 130cm 대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볼품이 없고 당연히 남자친구가 없습니다.
 
밖에서 할아버지와 딸을 만나서 제가 예수님을 전도했고, 자주 우리 집에 놀러오고, 예배 때 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일을 제게 시키셨기 때문에, 그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느라 전도에 아주 적극적으로 열정과 노력을 쏟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사 나갈 때도 그 집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집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그 집에서 잦았던 싸움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딸의 노처녀 히스테리와 할아버지의 젊은 날 방탕함에 대한 가족들의 상처 때문에 싸움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글 쓰는 사역을 가장 우선에 두라고 시키셨습니다. 그 일에 많은 시간을 쏟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론에 따른 선택과 유기로 세상을 운영 하신다면, 제가 세계 질서와 한국을 살리는 것이 선택이 된 만큼, 주인집 가정이 유기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집 주인 가정 때문에 우셨을까요? 왜 안타까워하셨고 제게 그 이유를 환상으로 보여주셨을까요?
 

 
예정 선택과 유기 비판

장 칼뱅의 예정론에 따른 선택과 유기는,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에게, 파라오와 모세에게는 분명히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4:7에 분명히 선행과 죄악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설명하셨기 때문입니다요즘 양과 채소 제물이라고 엉뚱한 해석이 나온 것과 분명히 다릅니다

룻기에서도 오르바와 룻에게는 예정론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분명히 신학자들은 궤변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 신학자들은 벧후3:9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심정을 왜곡했습니다. 장 칼뱅을 지키고자 하나님을 총알받이로 전락시킨 자의적 해석입니다. 고린도후서 2:17의 말씀에 위배된 행동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정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장 칼뱅의 예정설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장 칼뱅은 카톨릭 세력이 개신교 성도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하고 있을 때, 개신교회에 모인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 예정설을 가르쳤다! 모인 개신교 성도들에게 구원 선택의 확신을 안겨주기 위함이다.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론이 또 신학자들에게 올무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대상황에 맞춘 신학이라 함은, 시대가 바뀔수록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바뀐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3:8, 1:17, 마태복음 5:17-18에서 강조하는 예수님, 하나님, 말씀의 무변성, 항상성을 장 칼뱅을 통해서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 칼뱅은 하나님을 깨는 도구로 계속 사용됩니다. 신학자들은 장 칼뱅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성경을 궤변으로 짓밟습니다. 그래서 장 칼뱅의 추종자들은 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거창한 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계시만 받았을 뿐, 절대로 성경 진리에 관해서는 신학자의 변호를 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GF 교회와 B 목사조차도 그 범주 안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3:8 그 들이 제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지도 않았거니와, 고린도전서 1:13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밖에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조건을 달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12
 
그처럼 알미니우스 교리도 인정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을 하시든, 우리의 행위를 보고 뜻을 돌이키시든, 18:10, 32:14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저는 또렷이 주장합니다.
 
사람도 회사, 군대에서 사람 간의 협상으로 행정 계획을 수정, 철회, 보류를 합니다. 사람도 쉽게 가지고 있는 자유도를 하나님께는 허락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속성이 훼손된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데, 일개 사람, 신학자의 교리에 하나님께서 구애받고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 머리 위에 신학교수들이 자꾸 버릇없이 기어올라가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지옥에 쏟아집니다. 이사야 40:13, 로마서 11:34, 고린도전서 2:16
 
예정론자들은 히브리서 3:12를 설명해보십시오. 물론 그 이하 절에 설명이 다 나왔습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완고한 마음과 하나님을 격노케 함은 믿지 않는 상태의 표현이고, 순종은 하나님을 믿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행위로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안 믿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정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매순간 하나님을 믿음에 따라 순종한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전에 써드린 글들 대로, 아르미니우스 일변도, 예정론 일변도 교리를 가진 자들과 장 칼뱅, 마르틴 루터, 아우구스티누스를 변호한 신학자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집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붙들어야 천국 갑니다. 신학자와 교리를 붙들면 지옥에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공로인 바벨탑을 허용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리도 인간의 공로입니다. 고린도전서 1:29, 에베소서 2:9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환상으로 다 보여주셨기에, 제가 신학을 몰라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